요한복음 20장 6절 ~ 7절!
* 하늘로부터 내려온 옷! *
‘그 다른 제자가
몸을 굽혀 안을 살펴 보았는데
고운 삼베만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도착해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들어가 보니 고운 삼베가 놓여 있고
예수의 머리를 감쌌던 수건은
고운 삼베와 함께 있지 않고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요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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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무덤에 남겨진 옷
예수님께서 3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의
그 무덤을 보면 예수님을 덮었던
삼베와 수건이 남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입고(덮고) 있으셨던 모든 것을 벗어놓으신 채,
부활하신 후 어디론가 가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옷도 입지 않으신 채
더군다나 새 옷도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가렸던 삼베와 수건을 벗어놓고 나가셨을까요?
왜냐하면 그 삼베와 수건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이어진
인류의 죄와 저주를 감당키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 고운 삼베와 수건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명령해 ‘먹지 마라’라고 말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너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네가 일평생 수고해야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것이다.”’(창3:17)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죄로 인해 죽음이 들어온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롬5:1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무에 달린 사람마다 저주를 받았다”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갈3:13)
또한 예수님께서 삼베와 수건을 버리고 가신 것은
그것은 바로 멸시와 고통과 병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 받았을 뿐 아니라 고통을 겪었고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서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를 당했으니 우리마저도 그를 무시해 버렸다.’(사53:3)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덤에 옷을 버리고 가신 것은,
그 삼베와 수건이 아픔과 고난과 허물과 악함과 책망과 채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짊어진 병은 우리의 병이었고,
그가 짊어진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맞을 짓을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때리시고 고난을 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허물이 그를 찔렀고
우리의 악함이 그를 상하게 했다.
그가 책망을 받아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아서 우리의 병이 나은 것이다.’(사53:4~5)
때문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로는,
더 이상 죄와 저주와 죽음의 상징이자,
멸시와 고통과 병과 아픔과
고난과 책망과 허물과 채찍의 상징이었던 옷,
즉, 자신의 죽음을 덮었던
고운 삼베와 머리를 감싸던 수건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에는
예수님의 헌 옷이 남아 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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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예수님이 새로 입으신 옷!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차례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면,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고,
사람들이 예수님이라고 믿지도 않았을 뿐 더러,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미친사람이라고 말하며 쫓아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마리아에게 나타셨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옷이 예전의 옷이 아닌,
새 옷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네가 누구를 찾고 있느냐?”
마리아는 그 사람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이 그분을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겠습니다.”’(요20:15)
또한, 만약에 예수님께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아마도 제자들은 혼비백산해서 ‘미친사람’이라고 말하며 쫓아냈을 것입니다.
‘그날, 곧 그 주간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을 두려워해
문들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또한 의심 많은 도마는 예수님을 보고서도
그분이 진짜 예수님인 줄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옷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손과 옆구리에 있는 못자국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옷을 걷으시고,
손과 옆구리에 있는 못자국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8일 후에 예수의 제자들이 다시 그 집에 모였고
도마도 그들과 함께 거기 있었습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 예수께서 들어와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돼라!”’(요20:26~27)
또한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 옷을 입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날아 밝아 올 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요201:4)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로부터 어떤 옷을 받아서 입고 계셨을까요?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옷을 입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옷은 바로 하늘나라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위로부터 내려온 능력을 갖고 있는 옷을 입고 계셨던 것입니다.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눅24:49)
즉,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능력의 옷을 입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주어졌다.”’(마28:18)
또한 그 옷은 모든 사람에게 평강을 줄 수 있는,
평화와 평강의 옷이었으며,
‘그들이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바로 그들 사이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으라!”(눅24:36)
‘그날, 곧 그 주간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을 두려워해
문들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또한 우리에게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축복의 옷이었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베다니 앞에까지 가시더니
거기서 두 손을 들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중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눅24:50~51)
그리고 예수님의 새 옷은 우리를 먹이시는 양식의 옷이며,
근심과 걱정을 치유해 주시는 치료의 옷이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육지에 도착해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숯불 위에는
생선이 놓여 있었고 빵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방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요21:9~10)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떼를 먹여라!”’(요21:1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와 저주와 사망을 덮었던 헌 옷은 무덤에 남겨두시고
하늘나라 천국으로부터 내려 온 능력의 옷,
즉, 권세의 옷, 축복의 옷, 평화와 평강의 옷, 치료의 옷을 입고 계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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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내가 입고 있는 옷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옷을 입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2,000년전에 우리의 죄와 저주와 사망과
고통과 질병과 아픔과 채찍과 질병과 가난의 옷을 감당하신 후,
이미 그 옷을 벗으시고 무덤 속에 벗어놓으신 채
부활하신 후 하늘로부터 내려온 능력의 옷,
즉, 성령의 옷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그 성령의 옷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요20:22)
그래서 이미 우리는
새로운 옷을 입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으니
보십시오. 새것이 됐습니다.’(고후5: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덤 속에 버려진 헌 옷을 다시 입고 있습니다.
새 술은,
즉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거룩한 새 영을 받은 우리는,
성령, 즉 새 옷을 입을 입어야 하는데,
자꾸만 무덤 속에 버려진 옷을 입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 쓰게 된다. 그러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전된다.”(마9:17)
이미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성령의 옷을 입지 않고 여전히 죄와 사망의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옷은 불안의 옷이고,
근심과 걱정의 옷이고,
질병과 고통과 탐욕의 옷이요
분노와 시기와 다툼의 옷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빌4:6)
‘그분이 친히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해 살게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2:24)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들을 죽이십시오.
그것들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심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골3:5)
‘그러나 이제 여러분 스스로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증오와 악의와 비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을 제거하십시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사람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버리십시오’(골3:8~9)
‘육체의 일들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종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과 또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갈5:19~21)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서 난 옷을 입지 말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옷, 즉 성령의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골3:10)
우리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새 옷은 입으면
그 옷에서는 성령의 열매들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지할 율법은 없습니다.’(갈5:22~23)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반드시 하늘로부터 내려온 옷을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옷을 입었을 때에만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합니다.’(롬8:16)
그러니 사랑하는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더 이상 예수님의 무덤에 남겨진
죄와 저주와 죽음의 헌옷을 입지 말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늘로부터 내려온 성령으로
화평과 권세와 축복과 치유와 영생의 옷을 입은 새 사람이 됩시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